문익환 목사 방북
1989년 3월 민주화운동가 문익환 목사가 정부의 허가 없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다.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으로 첫 투옥된 이래 그는 1980년 내란예비음모죄(신군부 시국사건), 1986년 서울대 5월제 분신사건 연루 등으로 17년 동안 6차례, 합산 10년 3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로 사회주의권과의 교류 분위기가 무르익던 가운데 벌어진 이 "방북사건"은, 같은 해 서경원 의원·임수경 방북과 함께 한동안 형성됐던 대공산권 우호 분위기를 거꾸로 반공의 불씨로 되돌리는 계기가 됐다. 문익환은 귀국 즉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19개월을 더 복역했다. 1991년 분신정국 당시 장례위원장을 맡은 일로 또 한 차례 수감됐다가 1993년 3월 사면됐고, 이후에도 통일운동을 이어가다 1994년 1월 18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분단 이후 민간인의 자발적 방북이 본격적으로 사회적 쟁점이 된 사례였다.
관련 인물
세계는 같은 시기
- 천안문 사태 (1989)
1989년 4월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베이징 학생·시민들이 정치 개혁과 부패 척결을 요구하며 천안문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와 단식 농성을 벌였다. 6월 3~4일 중국 정부는 계엄군을 동원해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같은 시기 소련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움직임에 자극받은 중국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였지만, 중국 공산당은 정치적 자유화를 거부하고 경제 개혁만 지속하는 노선을 분명히 했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북방외교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같은 무렵의 사건
인물 페이지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