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헛된 강화 교섭 — 심유경과 고니시 유키나가

1593 8월 · 부산

서로 겹쳐 놓인 두 장의 외교 문서와 인장, 벼루, 접부채를 가까이 담은 정물.
AI 재현 실제 사진이 아니라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해 그린 그림

제2차 진주성 전투 이후 전선은 교착됐고, 명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를 창구로 3년 넘게 강화 교섭이 이어졌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 황녀를 일본 왕비로 삼고 조선 남부 4도를 할양하라는 등 명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던 반면, 협상 실무를 맡은 양측 관료들은 이를 은폐한 채 서로 유리하게 문서를 꾸며 보고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1596년 명의 책봉사가 오사카에서 도요토미에게 "일본 왕에 책봉한다"는 내용만 전달되며 그가 요구한 조건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협상은 완전히 결렬됐다.

이 사건은 임진왜란·정유재란 루트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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