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1992년 8월 24일 베이징에서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하며, 냉전기 적대국이던 양국이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진전이 지체됐던 한중 관계는 체육 교류와 비정치적 교류를 거쳐 마침내 결실을 봤다. 같은 해 9월 노태우는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헝가리 수교로 시작된 북방외교가 가장 비중 있는 목표였던 중국과의 수교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관련 인물
세계는 같은 시기
-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1978~1992)
1978년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이 실권을 잡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운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했다.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선전 등에 경제특구를 설치해 외국 자본과 시장 경제를 단계적으로 받아들였다.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치체제는 공산당 일당 지배를 유지하면서 경제만 점진적으로 개방하는 독특한 노선을 택했다.
- 소련 해체 (1991)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 개혁이 가속화되며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뒤, 12월 25일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다음날 소련이 공식 해체됐다. 12개 공화국이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했다.
1985년 취임한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의도와 달리 체제 자체의 붕괴로 이어진 결과였다. 1990년 한소수교,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 등 한반도 탈냉전 외교도 이 흐름 속에서 가능해졌다.
참고 자료
- 국가기록원 한국중국수교
- 우리역사넷 냉전체제의종식과북방외교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같은 무렵의 사건
인물 페이지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