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풍자·표현 자유 허용
198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노태우는 정치인과 정치에 대한 풍자·표현의 자유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5공화국 내내 언론을 보도지침으로 통제하고 정치 비판을 용공으로 몰던 것과는 분명한 차이였다. 미국 프리덤하우스는 1990년 한국에 "언론 자유국" 지위를 부여했다. 6월 항쟁의 성과가 언론·표현의 자유 확대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변화였지만, 동시에 노태우 정부 출신 인사 다수가 5공 핵심 인물이라는 한계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관련 인물
세계는 같은 시기
- 천안문 사태 (1989)
1989년 4월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베이징 학생·시민들이 정치 개혁과 부패 척결을 요구하며 천안문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와 단식 농성을 벌였다. 6월 3~4일 중국 정부는 계엄군을 동원해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같은 시기 소련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움직임에 자극받은 중국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였지만, 중국 공산당은 정치적 자유화를 거부하고 경제 개혁만 지속하는 노선을 분명히 했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노태우
- 나무위키 노태우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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