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학공업 과잉투자와 경제 불안의 그림자
수출 100억 달러 달성 이후 정부가 밀어붙인 중화학공업 육성은 1978년 들어 과잉투자의 부작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건설주 파동으로 율산그룹 등이 부도 처리됐고, 중동 건설 붐도 서서히 식어갔다. 1970년 12.8%였던 중화학공업의 수출 비중이 빠르게 늘면서 산업구조가 석유 의존도 높은 형태로 재편됐는데, 이는 이듬해 닥칠 제2차 석유파동의 충격을 한층 더 키우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남았다. 고도성장의 신화 아래, 다음 위기의 씨앗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세계는 같은 시기
-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1978~1992)
1978년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이 실권을 잡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운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했다.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선전 등에 경제특구를 설치해 외국 자본과 시장 경제를 단계적으로 받아들였다.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치체제는 공산당 일당 지배를 유지하면서 경제만 점진적으로 개방하는 독특한 노선을 택했다.
참고 자료
- 나무위키 박정희정부
- 나무위키 제10대국회의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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